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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성지안내



1. 개요
중세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아름다운 도시 프라하(프라하성)로 유명한, 또한 음악과 인형극, 낭만과 역사가 살아 숨쉬는 체코는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슬로바키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중부유럽의 내륙국으로 1,000-1,600m의 산맥에 둘러싸인 체코는 보헤미아 분지와 모라비아로 나뉜다. 체코는 카프카와 쿤데라를 비롯한 위대한 작가들과 스메타나를 비롯하여 많은 음악가를 배출했다.
국가명 체코 공화국 (The Czech Republic)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연방은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분리
수도 프라하 (약1,161,938명, 2003.1.1 현재)
면적 78,864㎢ (한반도의 약 1/3, 평지:산악=7:3)
인구 10,219,000명(2003.9.30.현재)
주요민족 체코인(Czech 94%), 슬로바키아인(Slovak 3%), 폴란드인, 독일인, 헝가리인 등
주요언어 체코어(Czech) - 세계에서 가장 발음하기 어려운 언어 공용어 - 체코어, 상용어 - 영어, 독일어, 문자습득률 - 거의 100%
종교 로마 카톨릭(Roman Catholic 39%), 개신교(Protestant 2.5%). 후스파 1.7% 1989년 11월 민주화 혁명 이후에 비로소 완전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됨
화폐 코루나 (Czech Koruna) * 1Kc는 45원 60전 정도(04년 10월 20일 현재) 100원은 2.194Kc
기후
온도/월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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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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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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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반부의 보헤미아와 동반부의 모라비아로 나뉘어진다. 보헤미아는 1000~1500m의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이며 엘베강과 그 지류인 블타바와 베론카강 유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평지이거나 완만한 구릉으로 국경에 가까울수록 산지가 많아진다. 모라비아는 체코모라바 고지에 의해 갈라지며 이 고지의 동쪽에 있는 모라비아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다뉴브의 지류 모라바강 유역의 낮은 지역으로 완만한 구릉과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북 2개의 지방으로 나뉜다. 기후는 서부의 경우 해양성 기후이며 동부로 갈수록 대륙성 기후가 강하게 나타난다. 프라하의 연평균기온은 7.9℃이고 연평균강수량은 533㎜이다.
주요산업 -
전압 -
시차 -
1. 역사
기원전 5세기 켈트인이 최초로 거주 6세기부터 슬라브계(系)의 체히인이 정착

625- 658년
830년
906년

1197년
1346년

1348년
1419-1436년
1526년
1620년

1781년

1836년
1848년



1867년
1914년
1918년



1929년
1939년

1944년
1960년
1984년
1989년


1990년

1993년
최초의 슬라브족 국가인 Samo 왕국을 건설(625년 - 658년)
체코와 슬로바키아 민족이 통일국가인 Moravia 왕국 건설
헝가리(마자르족)에 점령되면서 멸망.
보헤미아 왕국(10세기-1526) 지배 시작
프르셰미슬가(家)에 의해 체코(보헤미아), 세습왕국이 됨
룩셈부르크가(家)의 카렐 1세(신성로마제국 황제로는 카를 4세) 즉위
체코왕국, 황금시대 맞이함
프라하에 중부 유럽에서 최고(最高)의 카렐대학 설립
후스전쟁
합스부르크가(家)에 의한 체코왕국의 통치 시작
비라호라 전투에서 체코군이 황제군에 패한 이후
체코의 독립성을 차츰 잃어감
요제프 2세, 체코농민의 인신예속(人身隷屬) 폐지
이 무렵부터 체코인의 문화적 재생운동이 시작
F. 팔라츠키 《체코민족사》 간행
프라하에서 황제에 대한 청원운동이 시작, 임시정부 수립.
슬라브민족회의 개최.
급진파의 폭동 발생, 오스트리아군에 의해 진압,
체코에서의 혁명운동이 좌절됨
오스트리아/헝가리 2중 왕국 성립. 체코인, 개혁에 강한 불만을 가짐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체코슬로바키아 민족위원회의 독립 선언.
슬로바키아 민족회의, 체코와의 결합 선언.
혁명국민의회, 정식으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성립 선언, 초대(初代) 대통령에 마사리크 선출
대공황 시작
독일, 체코를 보호령으로 편입. 슬로바키아, 독일의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슬로바키아 봉기 시작. 소련군, 체코슬로바키아 침입
사회주의공화국헌법 제정
J. 사이페르트, 노벨문학상 수상
민주화 시위로 야케스 서기장 축출, 헌법개정으로 공산당의 권력독점제와 유일정당제 폐지
민주화운동의 지도자 V. 하벨 대통령 선출. 한국과 무역사무소 설치 합의
종교규제 해제. 한국과 외교관계 수립. 주둔한 소련군 철수 개시.
국호를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으로 개칭.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 2개 공화국으로 분리 독립,
바츨라프 하벨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


2. 주요 순례지
1. 프라하
인구 120만 명인 프라하는 흔히 ‘백탑의 도시’(괴테가 프라하에 여행 왔다가 붙인 이름), ‘유럽의 음악학원’ ‘북쪽의 로마’ (로마는 7개의 언덕이 있지만 프라하는 9개의 언덕이 있고 프라하 시내에 성당만 47개 ) 등으로 불리어지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고 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프라하는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자리를 잡은 9세기말부터 천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신비의 고도이다. 작은 골목 하나하나에도 중세의 향기가 베어있어 프라하는 중세도시 자체라 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건축물을 볼 수 있는 이곳은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아루누보 등의 다양한 건축 양식이 제각기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어 도시 전체가 예술 박물관이다.
중세의 좁은 골목 사이사이에 천 가지 색깔의 건축물이 웅장하게 자태를 드러내며 넓은 광장으로 이어질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시내 중심을 구비 구비 흐르는 블타바 강은 우뚝 솟은 프라하 성과 맞은편으로 펼쳐진 올드타운과의 대비를 더욱 강조해 준다. 올드타운은 198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이 곳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인 카를 다리가 있다.

아름다운 도시 프라하에도 슬픈 역사가 있었다. 후스 전쟁(15세게 초엽 종교개혁자인 후스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황제에 대항하여 일으킨 전쟁), 30년 전쟁,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1968년 프라하의 봄이라 불려지는 개혁운동 당시의 구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 기구 군의 침입, 그리고 1989년 구 체코슬로바키아 체제 전환인 ‘벨벳 혁명’ 까지 프라하는 수많은 역사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거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온 강인성이야말로 오늘날 프라하를 세계 관광도시로 거듭나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19세기를 대표하는 소설가인 프란츠 카프카는 이곳에서 나고 자라서 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다. 최근에 나타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이다. 부유한 집 출신으로 대학 가기를 거부한 그는 시나리오는 쓰는 극작가였다.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를 만든 밀로스포만 감독은 체코출신으로 바츨라프 하벨의 친구이다. 그래서 영화 아마데우스를 이곳 프라하에서 올 로케이션 했다.
프라하 골목을 누비고 있으면 눈에 보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보헤미아 크리스탈로 세계 3대 제품에 든다. 그리고 가넷(Garnet)이라는 준보석이 있다. 마치 우리나라 자수정처럼 아주 흔한 것으로 장식용으로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한해 1억 명 외국인이 찾아 드는 프라하는 세계 6대 관광도시이다.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 특히 배낭여행자들이 사랑하는 도시가 프라하이다. 오스트리아의 빈과 더불어 관광수익으로 국가 경제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1989년 공산체제라 붕괴한 이후 지리적으로 가까운 독일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으나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점차 영어가 확산되고 있어서 영어를 사용하기에 별로 지장이 없어지고 있다.
1993년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분리 이후 개방속도는 대단히 빠르다. 시내는 온통 서구화의 물결이다. 서방의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프라하 광광의 백미는 ‘왕의 길(The Royal Mile)’을 이용하는 것이다. 시청문화회관 옆 화약 탑에서부터 첼레트나(Celetna)거리, 구시가 광장, 카를로바(Karlova) 거리, 카를다리, 모스테카(Mostecka), 그리고 네루다(Neruda)거리를 지나 프라하 성까지 이르는 길을 왕의 길이라 한다.
왕실과 관련된 두 중요한 지점을 연결하는 이곳은 보헤미아의 왕과 왕비들 대관식 행렬이 지나간 곳이기 때문에 붙여졌다. 유명한 건축과 역사적인 장소를 모두 거치는 프라하 관광의 핵심이다.
프라하는 EU가 지정한 2000년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명명된 9시 도시 중 하나.
* 프라하 성
프라하 구시가에서 카렐 다리를 건너 블타바 강의 맞은 편 언덕 구릉 위에 위풍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프라하 성은 프라하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그리고 네오고딕에 이르는 천년 이상의 건축사를 웅변하고 있다.
프라하 성은 체코 통치자들의 궁전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성벽 안에 시대나 양식이 다른 다양한 건축물이 세워져 있다.
프라하 성은 9세기에 처음 건축되기 시작하였으며, 10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궁전과 여러 성당들이 건축되었다. 13세기 중엽에 이르러 초기 고딕양식이 부가되었다. 14세기 보헤미아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대에 체코의 아버지로 불리는 카렐 4세에 의해 고딕 양식의 왕궁과 성 피터 교회, 성 십자가 교회 등이 건축되어 당시의 황금시대를 짐작케 해 준다. 15세기 말 국왕이었던 블라디슬라프 2세 치하에서 후기 고딕양식적인 요소가 가미되었고, 1526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보헤미아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했을 때부터 르네상스풍의 건축이 가미되어 점점 복잡하고 정교한 성이 되었다. 프라하 성의 건축양식상 완결은 바로크시대에 이루어졌으며, 1753-1775년 사이에 현재와 같은 외관이 형성되었다.
이 성안에는 한 채의 궁전(로브코위츠 궁전)과 세 채의 교회(성 비타 성당, 성 조지 바실리카, 십자가 성당), 그리고 한 채의 수도원(성 조지 수도원)이 있다. 1918년 대통령의 관저로 바뀌면서 성의 내부 장식과 정원이 새로 정비되었다.


* 성 스테판 성당 (St. Stephans dom)
성 스테판 성당은 오스트리아 교회의 중심이자, 빈 시민의 정신적 안식처이며, 빈의 상징으로 1147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처음 건축되었으나, 1258년 빈을 휩쓸었던 큰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1263년 보헤미아 왕에 의해 재봉헌되었다. 이때 건립된 것이 '거인의 문'과 '이교도의 탑'인데 지금도 당시의 모습대로 남아있다.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식 성당.
그 후 합스부르크가의 영주들이 등장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을 헐어버리고 14세기 초 현재 모습의 고딕 양식으로 개축했다. 그러나 이 성당은 3세기에 걸쳐 부속 건물들이 건축되었기 때문에 현재 로마네스크와 르네상스의 양식을 부분적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성당의 고난은 그치지 않아 1945년에 독일군에 의해 많은 예술품과 지붕의 트러스가 파괴됐다. 심지어 1683년 터키인들의 포위가 끝난 후 남아 있던 대포를 녹여 만들었던 유명한 종 푸메린도 철저하게 부서졌다. 파괴된 성당은 종전 후 다음날부터 복구가 시작되어 현재는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는 Anton Pilgram이 조각한 설교단과 스테인드 그라스 장식이 유명한데, 고딕양식의 외부구조를 따르지 않고 고딕 후기의 중부 유럽에서 유행한 중앙의 신랑(身廊)을 중심으로 좌우에 측랑을 두었으며, 가느다란 기둥들이 아치를 떠받치고 있다. 지붕은 금빛과 청색 타일의 모자이크 무늬로 되어 있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136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는 첨탑과 아름다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성당에는 마리아와 예수상, 프리드리히 3세의 석관이 있다.
* 왕궁(로마네스크)
16세기말까지 보헤미아 왕가의 거주지였던 곳으로, 중세 체코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블라디슬라프 홀(후기 고딕)이 볼만하다. 1618년에 여기서 2명의 관리가 창 밖으로 내던져져 유럽의 30년 전쟁이 시작되었다. 보헤미아 회의가 개최된 광장에는 마리아 테fp사를 비롯한 합스부르크가 사람들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 성 비타 성당(고딕, 근대 고딕 양식의 서양 풍)
프라하 성의 언덕에 우뚝 솟아 있는 프라하 최대의 고딕 양식 건물로 10세기부터 점차적으로 건축이 진행되어 1344년 챨스 4세 때 본격적으로 건축하기 시작하였으며, 1929년 신고딕 양식의 건물 서쪽 부분이 완성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성당 규모는 길이 124m, 최대 폭 60m, 최고 탑 높이 100m로 우측 중앙의 성 바츨라프(체코의 고대 왕으로 체코의 수호성인 중의 한 사람) 경당과 좌측 바로 앞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하다. 체코 예술가들의 1930년대 작품인 내부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돋보이며, 지하에는 챨스 4세를 비롯한 체코 역대 왕들의 무덤이 있다.

* 성 이르지(조지) 바실리카(로마네스크)
대통령관저 맞은편에 있는 성 이르지 성당(Bazilika sv. Jiri)은 10세기 전후에 세워진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식 성당으로, 후방에 굵기가 조금 다른 2개의 첨탑이 솟아 있다. 내부는 음향효과가 좋아 매년 스메타나 기념일인 5월 12일부터 음악제 '프라하의 봄'의 주 연주회장이 된다. 병설 수도원은 현재는 국립 미술관 분관 Narodni Muzeum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체코 화가들의 우수한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 황금 골목(황금 소로)
성 이르지 성당에서 언덕을 내려오다 보면 16세기풍의 집들이 나란히 서 있는 작은 길이 있다. 이 작은 길에는 중세에 연금술사, 황금 세공사와 성의 일꾼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황금 골목(zlata ulicka)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소로 한쪽으로 들어서 있는 16개의 집들은 모두 어른들이 허리를 굽혀야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집들이다. 지금은 선물가게, 서점, 레코드가게들이 들어 서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고 있다. 그 중 19번지는 하벨 대통령의 전 부인이 세운 '올가재단'에서 경영하는 선물가게이며, 22번지 집은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1916년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약 반년동안 매일 늦게까지 집필활동을 했던 새카만 칠의 작은 집이기도 하다. 그의 '성(城)'은 바로 프라하 성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며, 많은 단편을 이곳에서 집필하였다. 프라하에서 가장 매력적인 길 중의 하나로 지금은 토산품 가게들이 있다. 마치 그림 같은 이 골목을 지나면 중세 감옥으로 사용된 달리보르카(Daiborka)가 있다.

* 벨베데르(요새화된 정원의 여름 궁전)
프라하 성의 여름 궁전으로 1538-1564년 사이에 지어진 2층의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다. 궁전 정면의 르네상스 정원에 위치한 '노래하는 분수'로도 유명하다. 산뜻한 인상을 주는 이 건물은 나무 사이로 보이는 프라하 성과 성 비타 성당의 전망이 일품이다.

* 마티아스 문(Matyasova Brana)
성의 서쪽에 있으며, 문 앞에는 항상 호위병이 서 있고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 문으로 들어가면 대통령 집무실 건물이 있다.

* 프라하 성 서쪽
프라하성의 서쪽에 펼쳐진 대사관과 정부 관공서가 즐비한 조용한 구역이다. 대부분의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로레타 성당
1626-31년 이탈리아의 산타 카사 수도원을 모델로 세워진 바로크풍의 건축이다. 흐라찬 언덕을 뒤로하고 서쪽으로 가다보면 로레타 성당(Bazilika sv. Loreta)이 보인다. 성당 옆에는 27개의 종을 가진 '로레타의 종'이 있으며 1시간마다 기원의 멜로디를 울린다. 이 성당은 황금과 보석을 소장하고 있는데, 6천 6백여 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프라하의 태양'도 이곳에 있다.

* 로레타 성당
14세기부터 지하마을로 번영한 타원형 광장이다. 대부분의 건물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어 모차르트의 시대를 재현한 영화 <아마데우스>도 여기서 촬영되었다.

* 스트라호프 수도원
프라하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수도원으로 블라디슬라프 2세에 의해 1143년 말라스트라나에 세워졌다. 수도원에 있는 도서관에서 화려하게 장식된 중세의 1백만 권의 책들을 볼 수 있다. 수도승들이 1세기가 넘게 수집한 책들로 필사본과 첫 간행본을 포함해 철학과 신학에 관한 세계 최고의 수집처 중의 하나이다. 철학 도서관의 천정은 목조와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으며, 고대의 목조 인쇄물이 있는 아래층의 국립 문학박물관도 유명하다.

* 말라스트라나
블타바 강과 프라하 성 사이에 위치한 비교적 좁은 지역으로 13세기 무렵부터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프라하 성 지역과는 대조적으로 서민적인 모습이 풍부한 지역이다.

* 카렐교(Karluv most)
블타바 강에 위치한 중부 유럽에서는 레겐스부르크(Regensburg)교 다음으로 오래된 석조 다리이다. 10세기 초에 목재 다리로 건설했다가 12세기 중반에 석재 다리로 개축했으나, 그 후 홍수로 유실되고 지금 있는 석재 다리는 1357년 찰스 4세 때 착공하여 15세기 초반(1402년)에 완성된 것이다. 현재는 보행자 전용이다. 길이 520m, 폭 10m로 다리 양끝에는 고딕양식의 tower가 있다. 양쪽 교각에는 각각 15개씩 성서에서 따온 30개의 고딕 및 바로크 양식의 성인상이 줄지어 서있다. 이것들은 모두 체코의 최고 조각가들이 17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약 250년에 걸쳐 제작한 것이다. 그 중 일부는 모조품으로 원작은 라피다리움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구 시가지에서 입구의 탑 밑을 지나기 바로 전에 오른쪽에 보이는 동상은 찰스 4세 동상으로 찰스대 설립 500주년을 기념하여 1848년에 세운 것이다. 카렐교에는 일년 내내 각종 기념품을 파는 상인과 악사 및 관광객으로 밤늦게 까지 붐비며 카렐교에서 바라보는 블따바 강과 30개 성인상의 호위를 받고 있는 카렐교, 그리고 구시가지 풍경도 일품이지만, 구시가지 쪽 다리 입구에서 바라보는 카렐교와 프라하 성 모습(특히 야경)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과 같다.

* 성 미쿨라쉬(니콜라스)성당
바로크 양식의 가톨릭 성당으로 말라스트라나 광장을 내려다보듯 광장 한가운데 건축되어있다. 1704-1755년 사이테 크리스토프 딘젠호퍼 부자와 안토니오 루라고가 만든 것이다. 이 성당은 1760년에 얀 루카스 크랏켈이 본당에 성 니콜라스를 찬양하는 대형 프레스코화를 그린 이후로 성 니콜라스 성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성당 천장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돔 프레스코화 ‘성 삼위일체에 대한 경배(1753년)’가 그려져 있다. 이 성당 앞에는 1715년 '역병의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입구 위에는 1746년에 만들어진 오르간이 있는데, 1787년 모차르트가 연주차 프라하를 방문하여 연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광장 쪽에 나 있는 서쪽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멀리 보이는 화려한 중앙제단이 시선을 압도한다. 중앙제단에는 황금 옷을 입은 성 니콜라스의 조각상이 있는데, 두 팔을 벌리고 잇는 모습이 마치 성당으로 들어오는 모든 이들을 환영하고 있다.

* 구시가(스타레 므녜스토 : Stare musto)
프라하 성과 함께 볼거리가 많은 지역으로 11-12세기 무렵 상업교역의 중심으로 번영하였다. 지금도 레스토랑, 토산품점이 즐비하며 관광객으로 늘 붐비고 있다. 볼거리와 쇼핑 양쪽을 즐길 수 있는 첼레트나 거리와도 가깝다.

구 시가 광장
옛 시가 중심에 위치한 광장으로 후스 운동, 프라하 시민 운동 등 프라하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던 무대이다. 1621년에는 Habsbourg 왕가에 반기를 든 27명의 민족 지도자들이 이곳에서 공개처형 당했다. 1948년 2월 21일, 프라하 혁명 때 Klement Gottward가 노동자의 승리와 공산주의 혁명을 외치며 연설한 곳도 이곳이다. 약 9000㎡인 광장 중앙에는 신학자이며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의 조각상이 있고(얀 후스 처형 500주년을 맞은 1915년에 세워진 것임) 시민의 휴식처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친근한 곳이다. 주위에는 구 청사, 트윈 교회, 킨스키 궁전 등이 들어서 있으며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주거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구 시청사
시의회 창립 결정 후인 1338년 건조된 이후 수세기에 걸쳐 확장 공사에 따라 여러 채의 건물이 이어서 지어졌다. 대형 홀이 있다. 이 시청사에는 69.5m의 탑에 독특한 장치의 천문 시계가 설치되어 있는데 매시간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2개의 창이 열리고 그리스도의 12사도를 본뜬 인형들이 하나씩 모습을 나타내며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밑에 있는 2개의 시계는 천체의 회전과 사계의 이동변화를 나타낸다.
청사건물 정문 위 르네상스식 창문 위에는 "Praha. Caput. Regni" 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프라하, 왕국의 수도"(Prague, Capital of the Kingdom)라는 뜻이다.
천문시계
이 건물의 시계탑 전면은 상부의 천문시계와 하부의 원형시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문시계는 시계공 미큘라스(Mikulas)가 1410년에 최초로 제작한 후 수차 재건된 것이다.
천문시계 한 가운데는 푸른 지구가 위치해 있고, 3개의 시계바늘 축은 지구의 중심으로서 프라하를 가리키고 있다. 3개의 시계 바늘은 각기 바늘 끝에 달려있는 태양, 달, 별 모양이 암시하듯 태양시간, 달 시간, 황도대를 각각 가리키고 있으며, 가장 외부에 있는 24 아라비아숫자는 고대 보헤미아 시간을, 다음 안쪽 2쌍의 12 로마숫자는 중부유럽의 낮 밤 시간을, 가장 안쪽 2쌍의 12 로마숫자는 일출에서 일몰 시까지의 낮 시간을 나타내고 있다. 위의 푸른색은 하늘을, 아래의 갈색은 땅을 나타내며, 갈색 안의 검은 색은 여명을 나타낸다. 매시 정각 천문시계 옆에 있는 해골인형(죽음을 상징하며 시간의 유리잔을 들고 있다)이 움직이면서 종을 치면 그 위의 문이 열리고, 그리스도 12제자의 인형이 차례로 나타난다. 이때 천문시계 왼쪽에 있는 거울을 보는 자(허영을 상징)와 돈지갑을 든 유태인 인형 (부를 상징)이 같이 움직이고, 동시에 오른쪽의 터번을 쓴 터키인은 음악을 연주한다.
천문시계는 "여명의 시간이 다가오면 허영과 부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매시 마다 알리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재미있어 할 때, 종소리가 끝나고 닭이 울면서 새벽이 왔음을 알려준다는 의미. 하부에 있는 원형모양은 12달을 나타내는데, 한 가운데에는 구 시가지의 문장이, 다음 12개의 작은 원과 큰 원에는 12달의 상징과 월별 전통 관습을 나타내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바깥 가장자리를 따라서 365일의 매일을 상징하는 성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시간과 우주의 법칙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지금 이 시각에도 운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좌측에는 철학자와 천사가, 우측에는 천문학자와 연대기 편자 인형이 말없이 서 있다.
천문시계의
전설
이 시계는 15세기에 카렐 대학 교수 하스주가 만들었는데, 그 아름다움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소문나자 다른 도시, 국가에서도 똑같은 것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쇄도하게 되었다. 한편 이 시계를 독점하고 싶은 프라하의 시청에서는 교수가 다시는 똑같은 시계를 만들 수 없도록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슬픈 교수는 다시 자신의 걸작을 만져보기 위해 시계탑에 올라갔다. 그리고 그가 시계에 손을 대자마자 시계는 그대로 멈춰 이후 400년 이상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1860년부터인데 그때부터는 하루도 쉬지 않고 12제자의 인형이 많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다고 한다.
틴 성당
고딕 양식
의 높이 80m인 2개의 첨탑을 지닌 시청사의 동쪽 맞은 편에 우뚝 솟아 있는 구시가의 상징적인 교회이다. 황금 성배를 녹여 만들어 부착한 첨탑의 성모 마리아 상, 고딕 양식으로 조각된 실내의 예수 십자가상, 백랍 세례반 등이 볼거리다. 현재의 건물은 고딕 양식으로 14-16세기에 만들어졌으며 내부의 바로크 양식의 재단 등이 유명하다. 교회 안에는 루돌프 2세를 위해 일했던 덴마크 출신의 유명한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1546-1601)가 묻혀있다.
화약 탑
13세기말, 탄약 저장을 목적으로 세워진 높이 65m의 탑으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탑에 오를 수 있다. 후기 고딕양식으로 지은 것으로, 1475년 요새화 된 구시가의 13개 성문 중 하나를 대체한 것이다.
프라하에서 가장 큰 18톤짜리 종을 만든 직공 토마스 야로스의 작업실로 쓰였던 이 탑은 본래 1496년 스태그 해자를 굽어보는 대포 요새로 지어진 것이다. 그후 루돌프 2세 치하에서는 연금술사의 연구실, 화약창고 등으로 쓰였다가 1960년대 이후부터 종주조와 연금술에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되어 있다.
유태인 거리
13세기 무렵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프라하에 살았던 유태인의 대부분은 이 지구에 다른 사람들과는 격리되어 살고있었다. 그 때문에 이 지역은 유럽 최대의 유태인 주거지로서 유명했으며 시나고그 Synagoga(유태인 교회)등 유태인 사회를 알 수 있는 볼거리가 많다.
신구 시나고그
(Staronava Synagoga)
1270년에 세워진 것으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태교회이다. 이 건물은 1270년부터 1945년 사이의 나치통치기간만 제외하고는 7백여 년 동안 계속해서 기도가 이루어졌다. 이 시나고그는 프라하에서 가장 큰 고딕 건물 중의 하나이다. 구시가 광장에서 블타바 강을 지나는 파르지슈스카(Parizska) 거리를 지나면 나온다.
* 신시가(Nove Mesto)
1348년 조성된 전통 있는 상업지역으로 지금은 다양한 상점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번화가이다.

바츨라프
광장
구시가 남쪽에 있는 프라하 제일의 번화가이다. 바츨라브 광장은 광장이라기보다는 파리의 샹젤리제 처럼 'boulevard'를 이루고 있으며, 길이 750m, 폭 60m의 대로로서 서울의 명동거리에 해당하는 번화가이다. 국민극장에서 나프시코페 거리까지 양편은 상점, 레스토랑, 호텔이 줄지어 서있고 번화한 쇼핑거리로 관광하기에 알맞은 거리이다.
10세기의 체코 왕, 성 바츨라프의 이름에서 이름을 따왔다. 보헤미아의 수호신인 성 바츨라프의 기마상과 다른 네 명의 수호성인의 기념상이 역사적인 바츨라프 광장에 서있다. 이 광장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말 시장으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체코 역사의 전환기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장소이다.
1918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몰락으로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이 이 곳에서 설립 되었고, 1948년에는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여 사회주의 공화국이 이 곳에서 선언되었다. 1968년 '두브체크'로 대표되는 개혁공산주의자들이 시도한 '프라하의봄'이 소련군 탱크부대의 침공으로 많은 체코국민들이 생명을 바친 곳으로 유명하며, 1989년에 일어난 체코 민주화혁명도 바로 이곳이 중심지였다.
국립박물관 앞에 세워진 높은 동상이 성 바츨라프 기마상(1912~1913년 건립)이다. 성 바츨라프는 10세기경의 인물로 국난이 닥쳐왔을 때 중부 보헤미아의 그라니크 동굴에서 깊은 잠에 빠진 기사들을 깨워, 그들을 이끌고 적군을 격퇴 시켰다는 전설의 주인공으로 체코 민족의 수호성인으로 신성시되었다. 기마 상 앞뒤에 있는 4명의 호위 성인은 1920년대에 추가되었다. 동상 앞에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을 탄압하던 소련군에 저항하다 희생된 사람들 특히 21세의 나이로 분신자살한 카렐대 학생 얀 팔라흐와 1989년 혁명당시를 기념하는 꽃과 촛불, 사진들이 항상 놓여 있다.
국립박물관
바츨라프 광장 정면에 있는 1885-1890년 건축된 근대 르네상스 풍의 건물로, 폭이 100m이고 높이가 70m에 이른다. 천정과 1층 방에는 체코의 역대 유명인사의 그림과 청동 흉상이 전시되어 있으며, 체코의 역사와 고고학, 화폐, 연극, 자연과학 자료를 다수 전시해 놓고 있다. 2층에는 역사관이 있는데, 문학, 음악, 희곡에 관한 진열장과 중세의 원고, 옛날 도장 들이 있다. 아울러 세계 대전과 공화국 수립, 사회주의 투쟁에 관한 자료와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다. 선사시대관에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토기, 보석, 도구들과 무덤을 복구해놓은 것도 있으며, 3층에는 자연 박물관으로서, 50여종의 동물 견본들이 있다.
비쉐흐라트
시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인 블타바 강기슭의 바위산 꼭대기에 있다. 7세기의 궁전 터라고 전하지만 지금은 공원으로 꾸며진 성터만 남아있고 체코 문화를 이끈 드보르작, 스메타나 등의 유명인들의 묘지와 성 페테르와 파벨 성당(근대 고딕 양식), 11세기의 성 마르틴의 로마네스크 식 로툰다, 17세기의 요새 등이 있다. 성당은 11세기에 만들어져 1902년에 재건한 비세흐라트의 상징으로 내부의 14세기 작품<비의 마돈나>가 유명하다. 비쉐흐라트는 블타바 강을 사이에 두고 프라하 시가지와 프라하 성이 엮어내는 웅장한 경관을 감상하기에 좋은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성 아그네스 수녀원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초기고딕양식의 건축인 성 아그네스 수녀원은 원래 '가난한 클라레스 성당'으로 1234년 바츨라프 1세가 그의 누이 아그네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건설된 옛 수녀원이다. 아그네스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열렬히 추종했으며, 속세를 떠나 수녀가 되었다가 이 수녀원의 최초의 여자 대수도원장이 되었다. 아그네스는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보헤미아의 성 아그네스로 선포되었다. 이 수도원에서 가장 유서 깊은 건물은 오른쪽 익벽으로 이것은 성 프란체스코 교회로 이어지는 일부였다. 현재 이 수녀원은 1980년의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쳐 국립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주요 소장품은 19세기 체코의 회화작품들이다.
2. 브르노(Brno)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브르노는 체코 제2의 도시이자 체코 동부 지방, 모라비아의 중심 도시이다. 수도인 프라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와 각각 도로와 철도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은 뒤늦게 개발되어 1766년에 최초의 섬유공장이 지어졌지만 19세기 말에는 모라비아의 중심지가 되었다. 여러 번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문화 도시로 번창하여 수많은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대학 등이 있다. 브르노는 중세 때 고대 무역상들의 교차로로 수세기에 걸쳐 남북 유럽인들이 섞여 살게 되었다. 17세기 중엽부터는 도시가 요새화 되면서 섬유제조 공장들이 18세기 중엽부터 들어서기 시작하여 계속해서 도시가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브르노는 다뉴브 강유역의 일부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과 많은 역사적인 연관이 있으며 전후 브르노 인구의 1/4인 게르만 민족이 빈으로 보내졌다. 남쪽으로는 모라비아의 저지대와 수목림과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드라니 구릉과 보헤미안-모라비안 산맥과 인접해 있다. 지리적인 이유로 브르노의 기후는 매우 온화하고 활동하기에 적당하다. 번화가인 마사리코바(Masarykova) 거리는 자갈길과 이곳저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 각 방면으로 달리는 시가 전차로 인해 처음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정신이 없는 곳이다. 또한 1928년에 전시관이 들어선 이후부터는 국제적인 박람회와 전시회가 계속해서 열리고 있다.
3. 체스키 크루믈로프(Cesky Krumlov)
체코공화국의 남동쪽에 자리한 중세의 성 도시인 체스키 크루믈로프는 인구 약 1만 5천의 작은 도시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체스케 부제요비체에서 남쪽으로 25km 떨어져 있으며, 불타바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강은 남쪽으로 보헤미아, 오스트리아, 바바리아를 서로 분리시키는 슈마바(Sumava) 산 아래에서 S자형으로 흐르고 있다. 13세기의 한 지주가 이곳에 성을 건설하면서 이 도시의 역사도 시작되었는데, 700년의 역사가 흘러도 중세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겨져 있다. 붉은 기와지붕의 중세적인 건물들과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고딕양식의 성, 바로크와 르네상스 등 중세의 미술양식이 섞인 정원들 등이 그것이다. 성 아래로 구시가지가 발달해 있는데, 지금까지도 이 도시의 중심으로 각종 상점과 박물관 등이 늘어서 있으며 지금까지도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이곳은 1992년에 프라하, 성 요한 네포묵 순례교회, 쿠트나 호라, 호란 비체 등과 함께 보헤미아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4. 오스트라바(Ostrava)
오스트라바는 체코의 네 번째 큰 도시이며 최대의 공업도시이다. 세베로모라프스키주(州)의 주도로서 프라하에서 280km 떨어진 체코공화국의 동북쪽 오데르강(江)의 넓은 골짜기에 있는 모라비아(Moravia)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폴란드와 유럽의 기점인 슬로바키아와 인접해 있다. 모라비아 지방의 중화학 공업도시이며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한 이곳은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때에 합스부르크가의 규율 아래에 있던 오스트라바는 그 뒤로 계속해서 산업의 도시로서 남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급속히 발전하였고, 벨벳혁명이후에 비공업화로 잠시 주춤했지만, 지금도 마인지역에는 석탄 공장과 야금공장, 화학공장 등이 체코 최대 공업도시임을 증명하고 있다. 오스트라바는 '블랙시티'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공장과 건물에서 뿜어 나오는 매연과 탄가루 등으로 뒤덮여 있다. 이곳에는 1829년에 설립된 체코 최대의 제철소가 있고 오스트라바, 카르비나 탄전의 중심으로 제철, 주조, 제강, 화학, 기계, 식품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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