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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성지안내



1. 개요
5세기에 프랑스 왕국이 세워졌고 843년 베르딩조약으로 현재와 같은 틀이 잡혔다.
14세기에 100년 전쟁 등 여러 전쟁을 거친 후 중앙집권적인 절대 왕정을 거쳐 1789년 대혁명, 1792년 공화정이 선포되었다.
나폴레옹 시대를 거쳐 1,2차 세계대전을 치른 뒤 1958년 드골의 제5공화국이 세워졌고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래 사회당이 집권했다.
1995년부터 쟈끄 시라끄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
국가명 프랑스 공화국 (La Republique Francaise, the French Republic)
수도 Paris (행정구역상 파리 : 인구 약 220만명) - 위성도시 포함 약 1100만명
면적 555,000㎢ (EU회원국 전체 면적의 1/5, 한반도의 약 2.5배)
인구 5940만명(2002.2)
주요민족 골(Gaule)족
주요언어 불어
종교 카톨릭(82%)
화폐 유로(EURO)
기후
온도/월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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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는 대서양과 지중해에 맞닿아 있다. 눈과 얼음의 알프스에서 온화한 지중해까지 수직 분포가 커서 기후, 풍토면에서 다양하다. 그러나 일부를 제외하면 습도는 낮아서 여름에도 땀을 흘리는 일은 좀처럼 없다. 파리를 중심으로 설명하면 여름 한낮에는 30도를 넘는 때도 있지만 아침, 저녁은 추위를 느낄 정도여서 냉방 설비가 되어있는 호텔은 한정되어 있다. 북 프랑스 방면으로 갈 경우에는 스웨터를 빼놓을 수 없다. 가을의 시작은 빠르며, 얇은 코트를 준비해 가면 좋다. 겨울철 파리 이북은 추위가 심하고 눈이 적으며 얼어붙는 듯한 날이 계속된다. 남 프랑스에 갈 때도 역시 코트는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일조시간은 파리 이북보다는 상당히 길기 때문에 다소 여유가 있다. 전반적으로 비는 조금 내리고 소나기나 장마처럼 며칠씩 계속 내리는 날은 거의 없으며 가을에는 차가운 비가 오는 날이 비교적 많다. 여름철의 지중해 연안을 제외하고는 어느 계절이든 더위보다 추위에 대해 신경을 쓰는 편이 좋다.
주요산업 -
전압 -
시차 8시간(한국이 8시간 빠르다)
2. 역사
5세기에 프랑스 왕국이 세워졌고 843년 베르딩조약으로 현재와 같은 틀이 잡혔다.
14세기에 100년 전쟁 등 여러 전쟁을 거친 후 중앙집권적인 절대 왕정을 거쳐 1789년 대혁명, 1792년 공화정이 선포되었다.
나폴레옹 시대를 거쳐 1,2차 세계대전을 치른 뒤 1958년 드골의 제5공화국이 세워졌고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래 사회당이 집권했다.
1995년부터 쟈끄 시라끄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
3. 주요 순례지
파리
세느강 중류부(中流部), 파리 분지를 중심으로 발달한 대도시, 시역(市域) 인구는 220만 명이다. 프랑스의 수도로서 정치의 중심뿐만 아니라 산업/경제/문화의 중심지이다.

루이 왕조의 궁정문화 시대부터 꽃의 도시로 알려져 왔고, 또한 국제 문화의 중심으로 명소/고적 등이 많은 아름다운 도시로서 세계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다. 파리의 시가지는 19세기 말경 이미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거의 갖추게 된다. 세느강을 중심으로 대로/광장/공원/다리 등이 배치되고 정연히 늘어선 주택과 함께 드물게 보는 도시미를 갖추고 있다. 도시의 기능으로 본다면 노틀담 성당이 있는 시떼섬은 파리의 발상지이며, 신앙과 법의 중심지이다.

세느강의 좌안(左岸)은 문고의 중심으로 중세 이래의 전통을 가진 소르본 대학이 있고, 그 주변은 카르체 라탕이라고 부르는 학생가(學生街)가 있다. 상 제르망 대로를 내려오면 관청가가 있고, 그 일각인 상드 마르스 공원에는 에펠탑이 우뚝 솟아 있다.

세느강 우안(右岸)은 산업, 금융의 중심지여서 파리 시청에서 루브르궁, 콩코드 광장을 거쳐 샹젤리제 대로로 연결되는 동서를 축으로 하여 그 주위에는 은행/증권거래소/상점/회사 등의 사무실이 집중되어 있다. 중심가의 동부에는 가내공업과 노동자 주택이 혼재(混在)하고 북부는 몽마르트 언덕을 둘러싸고 화가/화상(畵商)이 밀집하며 소극장/영화관 등이 있는 환락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중심가의 서부, 에트왈 광장의 남쪽은 고급 주택가이나, 최근에는 에트왈 서쪽 테프안스광장에 새로운 업무가(業務街)의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이 밖의 지역 양단에는 볼로뉴/빙산느 등의 큰 산림 공원이 있고 시내의 릭상부르 공원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가로수 등 녹지대가 풍부하다.

한편 파리 주변이 프랑스 제1의 공업지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서부 교외의 세느강 연안에는 르노 자동차 공장을 비롯하여 기계/금속/화학 등의 근대적 공업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들 경제활동의 집중에 의해 교외 주택지를 포함한 상징적인 파리는 파리의 시역을 넘어 크게 확대되어 인구 약 740만 명의 대도시 지역으로 발전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Louvre) 미술관은 세느강의 우안에 자리잡은 세계 최대 미술관의 하나이다. 건물은 13세기 초엽 요새로서 세워지고 그 후 르네상스풍의 궁전으로 다듬어진 루브르 궁전의 대부분을 이용하고 있다. 유명한 미로의 비너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한 동서고금의 일류 미술품 20만점 이상이 소장되어 있다.

하우스만 샬리가르뎅이 설계했고, ㅂ자형이다. 1200년 August Philip이 군사적 방법으로 성벽을 세우고 7대 왕에 걸쳐 만들었다. 찰스 5세 때 루브르를 사람이 살 수 있게 하고 사신들이 기거할 수 있게 했다. 그 이후 군사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게 하였고 프랑스와 1세 때 증축하고 장식했다.

루이 14세, 나폴레옹 1세 때 박물관으로 사용됐다.
개선문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기공되어 그의 사후 준공된 세계 최대의 개선문이다. 높이 50m, 개선문(凱旋門)의 바로 아래에는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는데 사철 등불이 꺼지는 일이 없고 헌화가 시드는 일이 없다.

비문 : 자기 조국을 위해 한 불란서 군인 쉬고 있네
샹젤리제
샹젤리제(Champs-Elvsees)는 개선문과 콩코드 광장을 연결하는 폭 70m, 길이 2km의 대로 중앙의 롱포앙을 경계로 동쪽 반은 공원, 서쪽 반은 상점가로서 특히 리도쇼(Lido Show)로 유명한 카바레와 식당/카페/극장 등이 줄지어 서 있는 파리 제일의 번화가이다. 옛날에는 왕족들의 산책 장소였고 10년 전 도로가 확장됐으며, 왕궁 정원사가 꾸미기 시작했다.
에펠탑
1889년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프랑스 기사(技師) 규스타브 에펠이 세운 높이 300m의 철탑. 이 에펠(Eiffel)탑은 파리의 상징처럼 되어 있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274m까지 오를 수 있다. 89년간에 걸쳐 건조된 철탑 건조물이다.
블로뉴 숲
파리시(市) 서단(西端)에 펼쳐지는 면적 약 9,000ha의 대공원. 예부터 대삼림(大森林) 지대를 이루고 있는데, 현재의 블로뉴(Boulogne) 숲은 그 일부이며, 나폴레옹 3세에 의해 공원으로 정비되었다. 공원 내에는 경기장/수도원/큰 연못/정원 등이 숲 사이에 산재하고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
프랑스 절대 왕조의 영화를 회상케 하는 궁전. 파리 남서부 18km지점에 있다. 궁전/정원/숲 속의 샘 등의 아름다움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의 베르사이유 조약이 이 베르사이유 궁전(Versailles 宮殿)에서 맺어지는 등 국제적 무대로서 자주 이용되고 있다.
콩코드 광장
튈르리 공원과 샹젤리제 가로 사이에 있는 큰 광장 중앙에 높이 23m의 오벨리스크와 두 개의 분수지(噴水池)가 있다. 콩코드 광장(Concorde 화합)은 또 대혁명 당시는 혁명광장으로 불리어, 루이 16세 등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길로틴의 이슬로 사라졌다.
노틀담 성당
12~13세기에 걸쳐서 건조된 프랑스 제1의 고딕식 성당. 탑의 옥상 난간에는 기괴한 조수(鳥獸) 모양을 한 악마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노틀담(Notre Dame) 성당의 탑 꼭대기에서 파리 전 시가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Notre Dame의 뜻 : 우리의 어머니 성 마리아.

명동성당이 노틀담 성당의 축소형이고, 정면에 구약의 왕, 12지파, 성 안나 등이 조각되어 있고 중세의 타락상이 표현됨.
(최후 심판 장면 조각)
파리의 수호 성녀 : 마리아
독일에서 정치적으로 탈환할 때 개선문을 통과하여 이곳으로 걸어와 미사를 봉헌함.
색유리 주제 : 신구약 역사를 담고 파이프 오르간과 더불어 유명하다.
제대 뒤에는 토마가 예수님이 참 구세주임을 고백하는 장면이 있고 마리아 막달레나가 성유를 부어주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음. 제대 주위에 주교, 추기경 묘소 있음.
엘리제궁
12월 31일 자정을 기해 엘리제궁 앞 광장에서는 폭죽을 터뜨리고 경적을 울릴 수 있으며 매년 20~30만명이 이 행사에 모여 기쁨을 나눈다. 제야의 종이 울릴 때 동양인에게 키스하면 행운이 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서로 동양인을 찾아 키스로 새해 인사를 한다. 프랑스는 자유를 사랑하고 생을 즐기며 건물은 대칭적으로 세우기를 좋아한다.
예수성심 성당
1910년에 지어졌고 셍드니 주교가 순교하여 몽마르트(순교자의 언덕) 성당이라고도 함. 1919년 국회에서 일반인을 위해 밤낮으로 성체 조배할 수 있게 결의했다.
기적의 메달 성당
성 빈첸시오 동상이 있고 성모 마리아가 카타리나 수녀에게 발현한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조각의 특색은 성모님 머리에 별이 그려져 있는 것이고 성모님이 "이 메달을 착용하라"고 말씀하셨다 함. 이 메달 착용은 많은 기적 혹은 치유가 이루어져 교구 주교를 통해 교황의 정식인가를 받았다. 카타리나 성녀 시신은 이곳에 모셔 놓았고 심장은 생가에 안장되었다.
파리 외방전교회
김대건 신부의 친서가 전시되어 있고 동양 전교지방의 성물과 활동상황이 상세히 사진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특히 이들은 한국교회의 여명기를 열었고 지금까지 계속 지원을 아끼지 않는 우리 교회의 은인들이다.
세느강
파리의 중심부를 동서로 흐르는 세느강은 강변풍경과 조각된 다리들이 아름답다. 이 강의 중심부에 씨테섬과 산루이 섬이 있고 북쪽 강변에 시청, 루브르궁, 콩코드 광장, 사이요궁이 있고 남쪽 강변에 에펠탑, 부르봉궁 등이 있으며 세느강의 다리는 32개이다.
루르드
루르드는 프랑스 남쪽의 국경을 막은 피레네산맥의 산록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본래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1858년 2월 11일 이후 수십 회에 걸친 성모 마리아의 발현이 있은 이후로 일약 세상에 유명해졌다. 그 마을의 교외에 있는 가르와리아라는 산록을 따라 가브강이 흐르고, 그 중간에는 샬레섬이 있어서 강물을 두 갈래로 나누고 있지만, 그것이 다시 합류되는 곳에 큰 절벽이 있고 그 가운데 마사비엘이라고 부르는 굴(洞穴)이 있다. 이곳이 성모께서 발현하신 성지이다.

그것은 교황 비오 9세가 성모 무염시태를 새 신덕도리로 반포하신 후(1854년 12월) 3년 2개월 째 되는 날이었다. 가난한 물방앗간 집에서 출생한 벨라데따라는 13세의 소녀가 강을 건너 마싸비엘 부근에 가서 땔나무를 하기 위하여 흘러 내려온 나무를 한참 줍고 있을 때 돌연 큰바람이 불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매우 놀라 뒤를 보니까 마침 굴속에 아름답고 어여쁜 한 부인이 계셨다. 그는 몸에 백설과 같은 흰옷을 입고, 허리에는 하늘색의 띠를 두르고 손에는 백주금쇄(白珠金鎖)의 묵주를 들고, 깨끗한 맨발로는 두 장미꽃을 밟고, 눈은 황홀하게 하늘을 우러러보고 계셨다. 벨라데따는 그이가 누구이신가를 아직 모르며 다만 그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되어 마음속에 무한한 즐거움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묵주를 꺼내어 같이 기도를 바치고 영광송이 끝나자 그 귀부인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 후 벨라데따는 집에 돌아와서 양친과 본당 신부께 그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2월 14일 벨라데따는 그 귀부인에 대한 정에 못 이겨 재차 마사비엘을 방문하였다. 그는 예상한 대로 또 귀부인의 발현을 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호기심으로 그를 따라간 다른 사람에게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그때의 벨라데따의 탈혼상태에 놀라 그와 소리를 합쳐 묵주기도를 바쳤던 것이다. 이러한 귀부인의 발현은 2월 11일부터 7월 16일 갈멜산의 성모의 축일까지 18회나 되었다. 혹은 호기심으로 혹은 신앙심으로 벨라데따를 따라 동굴에 가는 사람은 점점 증가하여 종종 수백만 명에 달한 때도 있었다.

3월 25일 성모 영보축일에 16회 째 귀부인의 발현을 본 벨라데따가 "오, 부인이여! 당신은 누구시며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옵니까?"하고 여쭈어 보니까 귀부인은 하늘을 우러러보시면서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자"라고 명백히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벨라데따에게 발현하신 분이 성모 마리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보다 먼저 성모 발현의 목적에 대하여 벨라데따에게 "여기에 성당을 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는 것을 원한다는 것을 사제에게 말하라"고도 분부하셨고, 또 "죄인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라"고도 명령하셨으며, 다시 벨라데따 개인에 대해서는 "나는 반드시 너를 행복하게 하여 주리라.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저 세상에서이다." 하고 고마운 약속을 하셨다고 한다.

2월 25일 9회째 발현에서는 "샘의 물을 마시고 세수를 하여라"고 명령받았다. 벨라데따는 샘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손짓한 곳을 손으로 파보니까 과연 물이 솟아났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후에 많은 병자를 영적으로 낫게 하고, 매일 12만2천4백 리터의 물을 내게 하는 루르드의 영천(靈泉)의 시작인 것이다.

이 영천의 난치병에 대한 효능은 실로 놀랄만한 것으로써 지금까지 영수(靈水)를 마시고 혹은 몸을 씻음으로써 아주 희망이 없었던 병자가 완쾌된 예는 얼마나 되는지 모를 정도이다. 1861년까지 3년 동안에 이미 100건 가량의 완치 사례가 있었고, 의사단(醫師團)의 엄밀한 조사에 의해서도 "그 중의 15건은 적어도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기적이다." 하고 결정되었던 것이다.

7월 16일 최후의 발현이 있은 후 그 교구의 주교는 신학자, 과학자, 의학자 등으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조직하고 발현의 사건에 대하여 충분한 신학적/과학적인 조사를 하도록 명하였는데, 그 결론은 각 위원 모두 자연적인 현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고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에 일치하였다.

이와 같은 기적이 세상에 알려짐에 따라 루르드에 순례하는 자는 날이 갈수록 증가되었다. 프랑스 국내는 물론 멀고 먼 외국에서도 개인으로 혹은 단체로 이 성지를 방문하고 그 동굴 앞에 무릎을 꿇고 성모의 전달을 간구했으며 영육간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고 그 영수(靈水)의 효능으로 난치병을 회복한 자도 그 수를 모를 정도로 다수에 달하였다.

리용시의 한 조각가 파비슈는 벨라데따에게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 모습을 조각하여 그것을 [마사비엘]의 동굴 안에 안치하고 1864년 4월 4일 그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오늘까지 세상에 유명한 루르드의 성모상은 바로 이것이다.

루르드의 성모의 전달로 은혜를 받은 신자들 중에는 감사의 헌금을 한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한 헌금으로 성모의 원의대로 그곳에 건립된 화려한 성당은 1876년 7월 2일 축성되었다. 그 후로 그곳을 참배하는 순례자는 한층 더 많아져 매년 평균 60만명인데, 1933년의 발현 75주년에는 실로 150만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병자의 완치는 모두가 기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루르드 의국조사위원(醫局調査委員)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초의 55년 동안에 기적이라고 인정되는 것이 4,445건이나 된다고 한다. 또한 루르드를 순례하는 병자가 모두 다 완치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누구든지 많은 위안을 얻어 병고를 잘 참게 된다는 것은 일반이 인정하는 바이다.

루르드 성지에서는 매일 미사성제가 여름에는 새벽 5시 30분부터 9시 30분 그리고 겨울에는 아침 8시 30분에 드려지고 있다.

성모상은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던 바로 그 모습이며 또 바로 그 같은 장소에서 성모님께서는 피레네 방언으로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벨라데따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려주셨다.

제대 왼쪽 동굴 안에 자물쇠로 잠겨진 돌판 아래에는 1858년 2월 25일 9번째 발현 당시의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벨라데따가 땅을 파헤쳤을 때 솟아올랐던 샘이 있다.

이 샘의 물은 몇 개의 큰 저수통에 저장되어서 목욕하는데 공급이 되고 또 우리가 마실 수 있도록 된 샘에도 공급된다.

샘 왼쪽에 대리석 판이 있는데 그 위에 성모님께서 벨라데따에게 여러 번 발현 당시에 하신 말씀이 적혀 있다. 그 말씀은 중요한 메시지로서 우리들 각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가브강을 따라 동굴을 지나가면 많은 순례객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1955년에 다시 지어놓았던 건물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목욕실로 지어진 건물이다. 여기서 병자나 건강한 이들 모두 목욕을 할 수 있도록 초대되고 있으며 수많은 이들이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 그리고 오후 2시 30분에서 4시까지 목욕물에 들어간다.

맨 위에 지어진 대성당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여기에 성당을 짓도록 하라"고 하신 성모님의 요청에 의해 지어진 것이며 그 성당의 제대가 바로 성모님 발현 장소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이 대성당은 출구가 왼쪽에서 시작된 것이다. 성당 양쪽의 유리문은 발현 당시부터 1876년 루르드 성모상 하관의 역사까지 계속 보여주고 있으며 또 좀더 위쪽 유리문들은 세상 태초부터 비오 9세까지 정식 [교의]로서 발표하시기까지의 성모 무염시태 신비를 상기시켜주고 있다.
십자가의 길
1912년 1,530m의 거리를 두고 언덕 위에 십자가의 길이 만들어졌다. 각처마다 쇠로 조각된 2m 높이의 상들이 있다. 누구나 이 언덕의 십자가의 길을 방문하면서 대사를 얻고 은총의 상태에서 거룩한 십자가의 고통을 묵상할 수 있다. 순례객들의 편의를 위해 왼쪽에는 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또 한편 병자 순례단을 위한 십자가의 길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것은 가브강을 따라 목욕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1963년 3월 25일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십자가의 길은 합당한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잘 준비시켜 준다.

여름에는 항상 문이 열려 있는 이 성당은 50개의 고해소가 있고 각 나라에서 오신 신부님들께서 각 나라 말로 고해성사를 주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바른쪽 경사지 위에 자리잡고 있는 이 사무실은 불치병 완치에 대한 연구나 교회에서 인정된 기적에 관한 순례객의 질문에 대한 안내의 역할을 하는 일을 한다.

서울: 04919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37길 11(중곡동) 세기빌딩 7층 │ 대구 : 41933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20(계산동 2가 71)
대표: 최성준│전화: 02-2281-9070│팩스: 02-2299-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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