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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성지안내



1. 개요
국가명 네덜란드 왕국 (The Kingdom of the Netherlands)
수도 암스텔담 (인구 : 108만명)
면적 41,548평방 Km (내해수면 제외시 면적 : 37,305 평방 Km)
인구 1,600만명
주요민족 화란족 (게르만족 계통)
주요언어 화란어
(영어통용, 독어 및 불어도 각각 인구의 30%, 20%정도가 이해 및 구사)
종교 카톨릭 (31%), 개신교 (14%), 캘빈파(7%), 이스람교(5%), 기타 종교 (3%), 비종교 (40%)
화폐 유로(EURO)
기후
온도/월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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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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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화다습한 해양성 기후 (여름 평균 16-17℃, 겨울평균 2-3℃)
* 연중 기온이 가장 높은 시기는 6월에서 8월이며, 이 시기의 기온은 섭씨 21 도에서 26도 정도이다. 겨울에도 영하이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별로 많지 않다. 공기는 상대적으로 습한 편이며, 늦가을 이나 이른봄에 안개가 자주 낀다. 나라의 지형이 대체적으로 평평하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10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바람이 강하게 분다.
* 1년에 거의 200일은 비가 오거나 흐리다. 하지만 비가 자주 오나, 많이 오진 않아 강우량은 한국 여름 장마철에 오는 비의 양과 비슷하다.
주요산업 -
전압 -
시차 -
2. 역사
네덜란드와 벨기에 플란더스는 언어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적/정치적/문화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네덜란드라는 단어는 낮은 나라(Nederlanden:Low countries)라는 의미와 함께 원래 두 지역을 함께 부르던 명칭이었다. 도시 중심의 주 개념으로 발달해 온 이 지역은 1831년 벨기에가 독립해 나오기까지 역사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이 많았다.
현재의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1815~1830년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 연합 네덜란드 왕국으로 정치적 연대를 이루었고, 그 이전의 카를 5세의 통치 기간에도 통합 왕국에 함께 속해 있기도 하였다. 이 두 나라의 문화적/경제적 발상지는 현재 벨기에의 브뤼헤(Brugge)였으나 안트워프(Antwerpen)에서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역사의 흐름과 함께 옮겨가게 되었다. 서유럽에서 가장 도시가 발달했고 길드를 중심으로 상업이 번창했던 이 지역은 비록 현재 강대국에 속하지는 못하나 최강의 무역 대국이었던 과거를 바탕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중세의 개념으로 네덜란드는 북해로 흐르는 스헬더 강, 마스 강, 라인 강의 입구에 형성되어 있던 지역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14세기와 15세기 유럽 최초로 통일 왕국의 형태를 고착시켰던 부르고뉴 공국(1363~1477)에 속해 있었는데 이 기간 동안 좀더 구체적으로 정치적/지리적으로 네덜란드의 개념이 형성되었다. 1482년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로 편입되었다.
스페인의 왕이기도 했던 합스부르크의 카를 5세는 1543년 네덜란드의 군주임을 선언하며 이 지역을 통일하였다. 1548년 열일곱 개 주로 구성된 네덜란드 지역을 부르군디 지역이라 하여 신성 로마 제국 안의 독립적 자치 구역으로 인정했다. 1549년 카를 5세는 국사 칙서에서 왕위 계승권자에게 이 지역을 승계할 것임을 선언하였고, 그의 아들 펠리페 2세(1527~1598)는 1555년 네덜란드를, 1556년 스페인을 통치하게 되었다.

16세기 말에 가서는 네덜란드 지역이 둘로 확실히 나뉘게 된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강력한 중앙 집권 정책과 과다한 세금 징수, 종교 탄압은 북부 네덜란드로 하여금 펠리페 2세에게 반기를 들게 하는 계기가 되어 스페인에 대항한 80년 전쟁(1568~1648)을 일으켰다. 전쟁에 참여한 북부와 그렇지 않은 지역은 현재의 네덜란드­벨기에 국경과 흡사한 경계를 이루었다. 모든 독립 운동과 전쟁은 빌렘 반 오란여(Willem van Oranje)의 지도로 시작되었다.
전쟁의 결과 북부에는 7개의 자치 주로 이루어진 네덜란드 연합 공화국(Republiek der Verenigde Nederlanden)이 생겨났고, 1648년 뮌스터 조약을 통해 합스부르크도, 신성 로마 제국의 속국도 아닌 독립국으로서 국제적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는 현재의 네덜란드의 기초가 되었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무역상들이 세계를 누비며 활동했다. 연방 동인도 회사와 서인도 회사를 설립한 이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미대륙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고, 여러 나라를 식민지화하기도 하였다. 부의 축적은 과학과 문화를 꽃피우기도 하여 렘브란트(Rembrandt), 베르메르(Vermeer), 프란스 할스(Frans Hals)와 같은 거장을 배출한 네덜란드는 이른바 `황금의 세기'를 이루게 된다.

해상권을 놓고 영국과 우위를 다투기도 하였지만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는 네덜란드 상인을 능가하는 이들은 없었다. 동양의 후추, 설탕 등을 독점하던 네덜란드에 대항하기 위해서 영국은 자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물건은 생산국 혹은 영국의 배로만 실어올 수 있다는 항해 조령을 1651년 발표함으로써 사실상의 선전 포고를 하였다. 이는 결국 전쟁으로 이어져 여기서 패한 네덜란드는 바다의 왕자 자리를 영국에게 내주고 말았다.

한편 네덜란드의 활약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지금의 벨기에 지역을 넘보며 1667년 전쟁을 일으켰는데 1672~1678년까지의 두 번째 전쟁에서 완전히 패한 네덜란드는 해상권을 잃은 데 이어 강대국 대열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1793년 프랑스 군대에게 점령당한 후 네덜란드는 1796년 바타비아 공화국(Bataafse Republiek)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나 1806년 프랑스의 지배하에서 홀란드 공화국(Koninkrijk Holland)을 세움으로써 다시 독립성을 잃게 되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를 군주로 앉히고 통치하게 하였다. 네덜란드인들의 거센 반발에 맞서 나폴레옹은 동생을 다시 불러들이고 자신이 직접 합병에 나서게 되어 이 지역은 1810~1813년까지 완전한 프랑스의 속국이 되었다. 1815년 나폴레옹의 패배 후 빈 회의에서 북부 네덜란드와 남부 네덜란드로 이루어진 네덜란드 왕국(Koninkrijk der Nederlanden)이 공인을 받음으로써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초대 왕은 빌렘 1세로 헌법에 기초하여 군주로서 통치하게 되나 1831년 남부 네덜란드가 벨기에로 완전히 분리됨에 따라 1839년에는 헌법의 개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1848년 신헌법에서는 왕의 권리를 축소하고 입헌 군주제를 확립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 헌법에 따라 각 장관은 국민의 대표자로 구성된 회의에서 선출되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빌헬미나 여왕(Koningin Wilhelmina:1890~1948)의 영도 아래 네덜란드는 중립국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지만 2차 세계 대전은 피해갈 수 없었다. 여왕은 영국으로 피신해 임시 정부를 이끌었고 국토는 독일에게 점령당했다. 2차 세계 대전을 고비로 네덜란드의 식민지들이 독립을 시작하였다. 1954년까지 인도네시아(옛 동인도 제국)는 연방 형식으로 네덜란드의 속국이었고, 1975년 남아메리카 대륙의 수리남이 독립하였다.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군도는 1954년 이후 같은 여왕을 모시는 연방 국가로 인정되고 있다. 수리남과 안틸레스 군도는 옛 서인도 제국을 형성했던 나라들이다.
3. 주요 순례지
암스테르담의 성모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성부의 아드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지금 이 세상에 당신의 성령을 보내 주소서.
모든 민족들의 마음속에 성령께서 살게 하시어
그들을 타락과 재앙과 전쟁으로부터 보호해 주소서.
일찍이 마리아로 불리었던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시여,
저희의 변호자가 되어 주소서. 아멘


성모님은 1945년에서 1959년 사이에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의 이다 페르데만(Ida Peerdeman)에서 발현하셨다. 그 때 성모님은 “지금 이 시대에 ‘당신을’ 공동 구속자, 중개자, 변호자”로 공식적으로 인정할 것을 요청하시고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는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 하셨다.
1961년 2월 11일에는 당신 자신을 “나는 모든 민족들의 여인이며 어머니인 마리아이다.”라는 새로운 호칭으로 소개했다. 성모님은 이 발현에서 분리될 수 없이 고통스럽게 연결된 십자가 앞에 서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당신의 펼쳐진 손으로부터 나오는 세 가지 빛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은총과 구원과 평화를 뜻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성모님은 위의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이 기도를 십자가 앞에서나 이 성화 앞에서 매일 바치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은총과 구원과 평화”의 선물들을 약속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마리아로 알고 있었으나 이제 나는 새로이 시작되는 이 시대에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셨다.
1996년 5월 31일 암스테르담의 보메스(Bomers)주교는 성모님을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공경하는 것을 허락했다. 2002년 3월 31일, 암스테르담의 푼트(Punt)주교는 이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 성모님 발현
암스테르담에서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로서의 성모님의 첫 발현은 1945년 3월 25일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에 일어났다. 이 발현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숨겨진 채 아주 조용하고 단순하게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은 아직 네델란드에서는 끝나지 않았기에, 암스테르담은 역사상 가장 끔찍한 시기를 거쳐가고 있었다. 그 날 이다 페르데만(Ida Peerdeman)부인과 그녀의 세 자매들은 방문 차 잠시 들른 절친한 한 사제와 함께 난로 주위에 둘러앉아 있었다.
활기찬 대화가 오가던 중 갑자기 특별한 일이 발생했다. 네 자매중 막내인 이다는 함께 모여 있는 그 방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형용할 수 없는 빛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는데, 자기 주변의 것들이 끝없는 구렁텅이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 빛에서 흰옷을 일은 한 여인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여인은 그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14년 동안 일어난 쉰 여섯 번의 발현의 첫 번째 발현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메시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많은 메시지와 모습들이 불분명한 채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의미와 전체적 중요성이 분명해졌다. 성모님께서 “그것은 해가 거듭함에 따라 진실한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표징들은 내 말속에 있다”라고 말씀하신 바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1945년부터 1950년 중의 첫 번째 스물 다섯 가지의 메시지들은 일반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 20세기 후반의 정치적, 영신적 혼란을 반영하는 장면들과 경고와 예언들이다. 성모님은 교회와 세상을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할 위협적인 위험들과 크나큰 영신적 투쟁에 대해 인류에게 경고하신다. 거듭 거듭 성모님은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지적하신다.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라, 그럴 때에만 진정한 평화가 있을 것이다.” 사랑과 진리와 정의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박힐 때까지 지상에는 아무런 평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모님은 또한 새 시대의 여명, 성령의 시대를 약속하신다. 1950년 성모 승천 교의 선포 후에 성모님은 지구 위에 서 계신 모습으로 나타나시어 이 시대에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로서 오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그 새로운 호칭으로 먼저 알려 주셨다. 그런 후에 그 메시지는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되며 세상을 구하기를 원하시는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를 통해 점차적으로 그 위대한 계획이 나타나게 된다.

1951년 2월 11일에 성모님은 당신의 상본과 더불어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짧고 단순한 기도문을 알려 주신다. 그 기도문은 “이 시대는 우리의 시대”이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에 성령의 오심을 간청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지향된 것이다. 성모님은 우리의 변호자로서 이 기도를 바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총과 구원과 평화를 약속하신다.
기도문과 상본은 또한 최종적이며, 마리아의 가장 위대한 교의, 즉 성모님의 ‘공동구속자, 중개자, 변호자’이시라는 새로운 교의에 대한 표현이며 그 준비이다. 성모님은 이 교의를 거슬러 많은 반대와 투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그렇지만 이 교의의 선포는 벌써 예정된 것임을 환시로써 발현 목격자에게 보여진 것이다. 이 교의가 선포될 때 인류를 위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성모님은 여러 메시지를 통해 여러 가지 심각하고 절박한 위험에 처해 있는 로마의 교회를 경고하시고, 사랑과 관대함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신다. 사랑을 통해서만 이 세상은 그리스도를 위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성모님은 인류에게 “하느님 나라가 그 어느 때 보다 더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에” 당신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아주 긴급히 요청하신다. 성모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치하고 그들의 손에 십자가를 지고 세상과 맞닥뜨리라고 호소하신다. 교회는 모든 백성들의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암스테르담은 이 운동의 중심지가 될 것이며, 이곳에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를 위한 특별한 교회가 건립될 것이다.
성모님은 당신의 마지막 메시지에서 “매일, 매시간, 매순간의 위대한 기적, 위대한 신비”인 성체에 대한 강조를 점증시키고 계신다. 1959년 5월 31에 일련의 여러 발현들이 장엄한 환시로 끝나는데 여기서 성모님은 천상 영광 중에 나타나시고 하얀 불의 성체로부터 온갖 광채와 장엄함 안에서 주님의 형상이 나타났다. 이때부터 발현 목격자들은 미사 중에 많은 체험과 환시를 보게 되었으며 이 체험들은 “성체적 체험”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1980년까지 계속되었다.
마리아는 이 시대에 모든 민족들의 여인,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신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성모님은 이 호칭으로 당신 자신을 밝히셨고 이러한 메시지를 1945년부터 1959년까지 한 순박한 여인에게 주셨다. 아주 긴급하게 성모님은 인류에게 당신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라고 요청하셨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하나의 더 큰 은총을 베풀기를 원하시기 때문인데, 그 은총은 모든 민족들의 여인, 어머니인 그들의 어머니의 목소리요, 말씀이다.” 성모님은 세상을 삼켜버릴 크나큰 영적 전쟁에 대해 경고하셨다. 십자가는 다시 한번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인들은 그 십자가 둘레에서 일치해야 할 것이다. 이것만이 참된 평화를 가져올 것이며 타락과 재앙과 전쟁을 피하고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성모님은 성령께서 지상에 오실 새로운 시대의 새벽이심을 알려 주셨다. 그래서 세상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당신의 성령을 지금 보내 주시고 모든 민족들의 마음속에 성령과 사랑과 진리의 영께서 살게 하시도록 간청하는 기도문을 주셨다.
마리아께서 공동구속자, 중개자, 변호자라는 새롭고 최종적이며 가장 위대한 마리아 교의는 이 새로운 시대에 선행될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상에서 주님께서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심과 동시에 인류를 당신 어머니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상 제사에 일치하시고, 육체적 영신적 고통을 함께 나눈,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 앞에 서 계신 주님의 어머니께 영광의 대관을 씌워드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무슨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 어떤 사람이든지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이시다. 성모님은 변호자로서 당신께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총과 구원과 평화를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인용 : 「이 시대는 우리의 시대이다」 하 안토니오 신부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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